여자에 관하여 - 수전손택
0 쪽팔림과 알려고 하지 않는 여자
‘좋은 단어’는 그 뜻이 모호하고 이용되기 쉽다. ‘아름다움’은 많은 풍미가 담긴 단어다. ‘사랑’도 그렇고 ‘자유’도 그렇다. 인간의 감수성을 먹고 생존해 온 단어들은 정말이지 이용당하기 쉽다. 나 또한 그 단어들의 모호함을 이용하는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글로 써보기도 하고, 입으로 소리 내 말해보기도 해야 한다. 글로 쓸 때는 단어가 가진 투명함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써야 하고, 말할 때는 단어에 어떤 먼지가 붙어 있는지 더욱더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또 버릇처럼 창문을 닫았다. 덕분에 단어는 투명함을 잃어가고, 말에는 자잘한 먼지들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하며 생각은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 고로 이야기해야 한다. 쓰던 말하던 이야기 하고 나면 부끄러움을 진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단어를 치사하게, 지저분하게 이용하는 내 모습이 ‘보이는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괜히 덮어두고 싶은 마음은 깊은 곳에서 꼬여 ‘자기 연민’의 원료가 될 것이다. 이는 계속해서 창문을 여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이해 못 할 광기가 될 것이다. (누구 씨의 말을 빌리자면 찐따가 되어가는 여정에 오르는 것)
어디에서도 가볍게 또는 깊게 이야기해 보지 못한 단어는, 내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성별’일 것이다. 성별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자꾸만 긴 서두를 붙이고 싶다. 어렵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단어에는 이야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쪽팔려서 숨기고 싶은 것도 많다. 그만큼 지겨운 이야기이며 닫아두고 싶은 창문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아름다움’과 ‘사랑’, ‘자유’만큼이나 이용당하기 쉬운 단어가 ‘여자’와 ‘남자’ 아닐까? 이용당해 온 시간도 매우 길 터이고 그만큼 엄청난 양의 불순물이 붙어 있을 것이다. 올해는 ‘여자’라는 단어와 관계를 맺어봐야겠다. 이야기해야 한다. 많이 읽고 자주 돌아다녀야겠다.
1 나이 듦에 관한 이중잣대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왜 재미가 없을까? 아무래도 비슷한 이미지의 향연처럼 느껴져서 아닐까? 패션 분야라면 스타일이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쏟아지는 xx 코어들이 정말 다른 게 맞나? 그저 ‘팔리는’ 거죽에 ‘팔릴 것 같은’ 거죽을 덧씌운 건 아닐까… 보여지기를 좋아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까지 읽고 슬그머니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다. 꾸미는 행위가 삶에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꾸밈’은 특정 성별에 더 부자연스러울 것을 강요한다.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잘 팔리는 광고 중 하나이다. 모두가 젊은 여자, 특히 젊고 예쁜 여자의 이미지에 끌린다. 그녀가 무엇을 입고 있던 입고 있지 않던 간에 말이다.
수전 손택은 「나이 듦에 관한 이중잣대」에서 노년과 나이 듦을 구분한다. ‘노년’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 객관적 고통이자 시련이지만, ‘나이 듦’은 주로 상상 속의 시련이며 본질적 특성상 남성보다 여성이 피해를 훨씬 많이 입는다. 특히 사회는 ‘젊음’에 정서적 특권을 부여하는데, 이는 여성에게 예뻐 보일 것 말고도 젊어 보일 것을 강제한다. 도시화 된 라이프스타일은 ‘젊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젊음’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는 세속 사회가 만들어낸 행복의 은유기 때문이다. 상업화된 행복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타인의 나이를 집요하게 의식하게 만든다. 수명이 연장되는 시대 속, 우리 사회는 나이 듦에 쫓겨 기행을 벌이기 시작한다. 별로 늙지도 않은 자신을 말라가는 과일처럼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이 듦’을 외모라고 부르는 표면의 싱싱함 그리고 심부 조직의 싱싱함으로 나눠서 생각한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내가 속한 ‘성별’은 그 싱싱함을 유지하는 것에 집착한다. 수전 손택은 이 ‘집착’의 이유를 젊음의 프로파간다 외에도 ‘나이 듦의 이중 잣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이중 잣대는 우리 삶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여성을 치장의 굴레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성적 매력과 직결된 외모에 들이대는 이중 잣대 아닐까? 남성은 섹스할 수 있는 한 계속 성적인 존재로 남는다. 외모가 늙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이 듦이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저 고추가 서지 않는 것, 혹은 이런저런 체위가 수월하게 되지 않는 ‘기능’을 걱정하는 정도일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외모 및 나이와 관련된 훨씬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성적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피부는 코끼리처럼 갈라져 기미가 피어 있고 얼굴은 해골에 가까워져 있으며, 가슴은 축 처져 있고 엉덩이 아래에 늘어진 살이 접혀있는 늙은 자신이 섹스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여성은 몇이나 될까? 여성은 몸을, 젊음을 보존해야 한다. 젊음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기 위해 여성은 다양한 기행을 벌인다. 노화를 성공적으로 미룬 여성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며, 여유를 누리며 자신을 가꾸기 위한 기행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부유한 여성의 기행이 외모를 향한 집착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 대 SNS 시대에 부유한 계급의 여성이 전시하는 삶은, 여성의 외모는 젊고 예뻐 보여야 한다는 환상을 지속적으로 살포하고 강화한다. 이 환상은 여성에게 자기의 얼굴과 몸을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수전 손택은 이 장에서, 여성은 얼굴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자신이 가혹하게 경험하고 있는 나이 듦의 이중 잣대를 먼저 분연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덧붙이면 과격할 수도 있겠지만, 섹시 바디 프로필은 나이 든 여성이 찍었으면 좋겠다. 젊은 여자 말고. 우리가 상상하는 ‘섹시함’이 젊음에 과도하게 묶여 있다면, 그것은 성적 자유라기보다 조건부 자유일지도 모른다. 천년만년 소녀 같은 얼굴, 갖고 싶은 얼굴, 자신의 리즈시절 얼굴 등을 욕망하는 퇴행적 행동에 머무르지 않고, 그 욕망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에게 유리한지, 무엇을 당연하게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젊고 예쁜 여자’라는 이미지가 무한히 재생되는 시대에 나이 든 여성의 상상은 점점 더 빈약해지는 것이 아닐까?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여성이 걸린 무한츠쿠요미를 깨야 한다.
2 여성의 아름다움 : 모욕인가, 권력의 원천인가? & 아름다움 : 다음엔 무엇으로 바뀔 것인가?
최근 성형 전 자신과 성형 후 자신이 함께 있는 모습을 AI로 합성해 올린 사진이 이슈였습니다. 그 사람의 용기와 기괴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타고난 외모에 만족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추구하는 외적 아름다움이 주어진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여성과 남성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중 여성은 특히나 그렇겠지요.
이제는 표준어처럼 자리 잡은 ‘추구미’는, 업계 사람들 그리고 소비자들이 모든 역사 속 여성과 가상의 여성에게서 아름다움을 찾고, 이를 팔기 위해 발명된 마케팅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도 추구미가 있지 않느냐? 라고 여쭤보실 수 있지만, 남성의 추구미는 주로 ‘태도’나 ‘능력’에 관한 것이지 외모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능 산업이 발전한 이후로 조금씩 외모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여성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미’는 가슴 설레는 단어입니다. 신선함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성’과 관련되면, 특히 여성의 외모와 관련되면 순식간에 지루해집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공식과 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창의성이 반영된다 하더라도 소량씩 첨가되는 정도입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과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E-girl이 있겠지요. E-girl은 서브컬쳐에 영향을 많이 받은 여성 스타일입니다. 인터넷 문화, 게임, 특히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속 ‘미소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거기다 몇 년 사이 K팝의 영향도 커진 것 같습니다.
E-girl은 노골적인 콘텐츠로 팬들을 끌어들입니다. 이에 따라 쉽게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지요. 이를 거부하는 E-girl들의 움직임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성이 세운 기준 안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위신을 잃은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E-girl들은 수익을 어떻게 창출하고 있을까요? 그녀들은 주로 플랫폼을 기반으로 수입을 얻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틱톡, 유튜브, 트위치, 인스타그램, 그리고 Only fans, 아프리카 TV 등이 있겠지요. (아, 저는 BJ도 E-girl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산업 속에서 아름다움은, 여성들이 추구하도록 권장되는 유일한 형태의 권력입니다. 수전 손택은 이 권력이 ‘무엇인가를 하는 힘’이 아니라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힘’이며 타고난 자기 외모를 부정하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 산업에서 아름다움은 기본 조건입니다. 소비자의 욕망은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아름다운 여성이 ‘꼴리는 행위’까지 수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름다움이 선행 조건이라면, 꼴림은 소비자의 명령이자 요구입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상품으로서 차별화하기 위해, 그녀들은 예쁜 외모로 엽기적이거나 추한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좋아서, 수익이 높아서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여성과 남성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분히 연극적인 이 콘텐츠의 주 소비자는 남성이고, 여성은 철저히 남성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메소드 연기자입니다. 명령과 수행이 주된 이 콘텐츠의 유행에 질린 남성 소비자는 어떤 것을 찾아 나설까요? 자연스러운 콘텐츠가 주는 자극을 원하는 소비자가 생기지 않을까요? ‘자연스러운 자극 추구’가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물은 스너프 포르노 필름이겠지요. 만약 어떤 여성이 진정 원해서 자발적으로 이 필름에 참여한다고 주장한다면, 뭐 그런거겠지요.
수전 손택은 말합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아닌 ‘아름다움’은, 특히 ‘아름다움’이 유일한 권력이라고 부추기는 현상은 여성의 나르시시즘을 장려하고, 의존성과 미성숙함을 강화한다고요. 그리고 덧붙입니다. 여성이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아름다움이라는 탁월함 및 특권과 거리를 두고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지탱하기 위해 아름다움 자체가 얼마나 축소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럼, 이 ‘아름다움’으로 자극적이고 섹슈얼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닌. 인플루언서로서 각종 브랜드의 제품과 외모를 내세우는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하는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요?
인플루언서인 그녀들은 스스로 ‘미’를 설계하고, 플랫폼을 선택하고, 제품을 만들거나 홍보해 수익을 챙깁니다. 이 경우, 겉으로 보면 경제활동의 주체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판매를 위한 수단인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성이 세운 기준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여성 고객의 제품 구매율이 더 높습니다. ‘남성의 시선’이 쌓아 올린 미의 기준에 여성도 동의를 하고 있고, 여성도 예쁜 여성을 보며 쾌감과 욕망을 얻는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남성의 기준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어떤 얼굴과 몸이 팔리는지를 결정하는 시스템 안에서 산업이 작동한다면, 과연 이것은 아름다움이 가진 권력일까요?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일까요?
수전 손택은 「아름다움: 다음엔 무엇으로 바뀔 것인가?」에서 (1975년 기준으로)현재 모두가 힘을 합쳐 영속적일 것만 같았던, 정적인 아름다움의 신화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혁명이지요. 다시 처음 언급했던, 성형 전 모습과 성형 후 모습을 나란히 놓은 사진을 떠올려 봅니다. 스스로 성형을 택한 사람이 얻은 ‘아름다움’은 남성 기준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AI로 사진을 만든 여성의 행동은, 남성 기준의 아름다움 이전의 자신도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요? 성형 전 자신을 지우지 않고 나란히 서는 것, 어쩌면 손택이 말한 ‘아름다움의 복권’에 가장 가까운 몸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비바 라 레볼뤼시옹!